에너지 휴전 논의하러 갔는데 美는 러 경유 제재 완화…우크라 "함정 같았다"

에너지 휴전 논의하러 갔는데 美는 러 경유 제재 완화…우크라 "함정 같았다"

[서울=뉴시스]박영환 기자 = 러시아와 에너지 시설 공격을 서로 중단하는 방안을 논의하러 미국을 찾은 우크라이나 대표단이 협상장에서 러시아산 경유 수출 제재 완화 방침을 전달받고 “함정처럼 느껴졌다”고 반발한 것으로 전해졌다.

10일(현지 시간) 키이우인디펜던트는 미국과의 협상에 참여했거나 관련 내용을 아는 복수의 우크라이나 당국자를 인용해 이같이 보도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러시아와의 에너지 휴전과 흑해에서의 상호 공격 중단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9~10일 미국에 대표단을 보냈다.

하지만 9일 협상에서 스티브 윗코프 미국 대통령 특사와 재러드 쿠슈너는 우크라이나 대표단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산 경유 수출 제재를 완화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알렸다.

우크라이나 측은 미국이 러시아와 경유 거래를 검토한다는 사실 자체는 알고 있었지만 세부 내용은 트럼프 대통령의 발표 전까지 통보받지 못했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와 유럽이 에너지 휴전 조건을 논의하는 동안 미국이 러시아와 별도 조건을 이미 협상한 것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됐다.

한 우크라이나 고위 당국자는 당시 협상장에 유럽 대표단도 있었다면서 미국의 방침을 들은 뒤 “함정처럼 느껴졌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통화한 뒤 러시아가 미국과 세계시장에 수백만t의 경유를 공급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미 재무부 산하 해외자산통제국(OFAC)도 러시아산 경유를 세계시장에 공급할 수 있도록 한시적인 일반허가를 발급했다.

갈등은 러시아산 경유 거래 이전부터 쌓이고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13일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러시아의 경유 생산시설을 타격하는 공격을 중단해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우크라이나는 일방적인 공격 중단에는 응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러시아 역시 우크라이나 발전소와 변전소 등 에너지 기반시설에 대한 공격을 멈춰야 에너지 휴전이 성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정유시설과 석유 터미널 등을 공격해 러시아의 연료 생산과 전쟁자금 조달 능력을 압박하고 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발전소와 변전소 등을 반복적으로 공격해 전력과 난방 공급에 타격을 주고 있다.

키이우인디펜던트가 접촉한 우크라이나 당국자들은 미국 협상팀이 젤렌스키 대통령이 러시아 정유시설 공격 중단을 거부해 에너지 휴전이 막히고 있다는 취지로 문제를 제기했다고 전했다.

협상에 참석한 한 인사는 미국 측으로부터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정유시설 공격을 계속하면 정보공유가 중단될 수 있다는 취지의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다만 액시오스는 별도 보도에서 미국 당국자가 그런 위협을 했다는 주장을 부인했다고 전했다.

미국의 정보는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내부의 목표물을 찾아 장거리 공격을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정보 접근이 제한되면 러시아 후방 깊숙한 지역을 타격하는 우크라이나의 능력도 약해질 수 있다.

우크라이나 고위 당국자는 러시아가 상응하는 조치를 하지 않는 한 러시아 정유시설 공격을 중단하기로 합의하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약속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양측의 에너지 시설 공격은 미국의 발표 뒤에도 계속됐다. 우크라이나 드론은 수시간 뒤 러시아 로스토프나도누의 석유 선적 터미널을 공격했고, 러시아는 10일 키이우에 드론과 미사일 공격을 가하면서 우크라이나 에너지 시설도 겨냥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9일 밤 기자들에게 보낸 음성 메시지에서 러시아산 경유 수출을 허용하면 모스크바가 전쟁을 이어갈 추가 수입을 얻게 된다고 비판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런 상황에서 우크라이나 대표단이 협상에 나서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우리 팀이 연막으로 이용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미국의 조치를 “강한 파트너가 내린 약한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우크라이나 측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같은 제한을 받아들여야만 에너지 휴전이 성립할 수 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한 당국자는 미국의 이번 조치가 에너지 휴전 구상 자체를 무너뜨릴 수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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